대학교 신입생 시절 과 재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엠티를 갔었습니다. 신입생인 우리 학번과 함께 2, 3, 4학년 선배들도 대부분 참석했었죠.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은 과라 참석 인원이 50명보다 조금 적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큰일나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엠티에서 남녀 따로 방을 잡던 시절이 아니었어서 아주 큰 방 하나에 50명 조금 안 되는 인원이 모두 둘러 앉아 저녁밥을 먹고 조금 쉬다가 밤에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죠.
원래도 술을 잘하는 타입이 아닌데다가 엠티를 가면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신입생이었으니 술을 먹이는 타겟이 되기 십상이었죠. 정신 없이 마시다보니 꽤나 얼큰하게 취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자정을 갓 넘긴 시간쯤이었을까요. 더이상 마시다가는 정말 정신을 잃거나 토를 할 것 같아 통화 한 통을 하고 온다는 핑계로 잠시 밖에 쉬러 나갔습니다.
펜션은 강원도 계곡에 있는 독채 펜션이었는데 마당에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앉아 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집이나 펜션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방 창문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불빛만이 눈을 밝혀주고 있었습니다.
10분쯤 앉아 있었을까요. 방에서 선배 한 명이 나오더군요. 그 선배는 저보다 한 학번 윗선배였는데 조기졸업을 해서 대학을 들어온 케이스라 저와 나이는 같았습니다. 나이가 같아서 가끔씩 밥도 먹고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던 그런 사이였습니다. 얼굴이 잘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둥글게 귀엽게 생겨 호감가는 인상이었고 워낙 착하고 저에게 잘해주었습니다. 당시 대학 입학 전에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기도 했었고 대학의 낭만에 부풀러 있던 터라 그 선배가 친절을 베풀거나 할 때면 마음이 설레기도 했었습니다.
선배는 제 앞에 와서 뭐하냐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잠시 쉬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럼 자기도 조금 쉬다가 가겠다며 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처음은 역시 그 선배답게 친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엠티가 재미는 있는지, 술 마시는 것은 힘들지 않은지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간 얘기를 나눴을까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 않냐면서 자기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지 않겠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아직 술이 깨지 않았기도 했고 술이 취하니 달달한 게 당기기도 해서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사실 아이스크림을 사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펜션이 워낙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를 타고서도 20분은 족히 가야하는 그런 곳이었으니까요. 슈퍼나 편의점이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스크림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선배와 조금 더 얘기를 해보고 싶었으니까요.
선배도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10분쯤 슈퍼를 찾아 걸어가다가 선배도 갈 수는 없겠다며 발걸음을 돌리자고 했었죠. 다시 펜션으로 향하였지만 곧장 펜션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얘기를 나누며 펜션 입구를 지나 그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얘기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참을 걸었을까요. 다시 펜션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죠. 그러나 입구까지가 멀기도 했고 술을 마셔서 무모해졌던 건지 그냥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철사가 튀어 나와있는 울타리였는데 말이죠.
선배가 먼저 넘어가고 저도 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두 발 모두 넘어 오고 한 쪽 발을 땅에 디디고 있는데 울타리에 튀어 나와있던 철사에 바지가 긁히고 말았습니다. 허벅지가 약간 긁혔고 바지는 찢어져 버렸습니다.
선배가 괜찮냐면서 아까 앉아있던 마당 나무 의자에 잠깐 앉자고 말했습니다. 다시 앉아서 선배는 제 다리를 살피며 괜찮은지 다시 한번 확인했고 큰 부상이 아닌 것을 알고는 다시 이야기꽃을 피워나갔습니다. 밤하늘 별을 보면서 별 이야기도 하고 인생 이야기도 하는 순서 없고 맥락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죠.
그런 이야기엔 연애 이야기 역시 빠질 수 없었죠.서로의 연애사를 묻기도 하고 이상형을 묻기도 했습니다. 남자 선배가 남자 후배와 엠티에 와서 1시간이 넘게 단둘이 이야기를 한다는게 흔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연애 얘기를 할 때 혹시 이쪽 부류인 것을 은근슬쩍 티내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습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요.
그렇게 얘기 중 갑자기 허벅지가 정말 괜찮은 거냐고 한번 봐야하는거 아니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고 하여 괜찮다고 했지만 선배는 걱정이 된다며 찢어진 바지 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넣어 상처난 허벅지 부위를 쓰다듬었습니다.
선배의 손가락이 허벅지에 닿을 때는 순간 전기가 찌릿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건 선배가 보낸 싸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모습에 저절로 선배와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그렇게 10초 정도는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얼음!'을 외치고 '땡!'을 외쳐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선배와 저는 그저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땡!'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둘은 입술을 포개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과 사람이 보았으면 어쩌지 싶었지만 술과 밤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떠오르지 않고 그저 서로 입술과 혀를 탐닉하는 것에만 열중하였습니다. 키스를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후에 입술은 떨어졌고 다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눈을 먼저 돌린 것은 저였습니다. 당황스러웠고 다른 사람들이 봤을까 걱정되기도 했고 이 선배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선배도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요. 선배는 이만 들어가보자며 먼저 앞장 서서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뒤를 바라보면 정신을 차리고는 저도 다시 들어갔고 아직 한창인 술자리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선배와 마주치긴 했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엠티는 끝이 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로 선배와의 연락도 뜸해졌습니다. 제가 먼저 연락해볼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어느날 선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