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일기장

2024.09.26 09:33

장문) 부모님께 커밍아웃, 상견례, 그리고 동거 썰 (2)

  • 익명게시자 오래 전 2024.09.26 09:33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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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반응이 좋아서 이렇게 2편으로 돌아왔음. 지난번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충 대학교 들어갈 때 끊었었는데, 그 이후에 부모님 커밍아웃, 상견례, 그리고 동거까지 썰 풀어봄.




내 남친은 이미 이민 3세대라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사실상 껍데기만 일본인이지 문화적으로나 정체성 같은거로 치면 걍 미국인임. 다만 어머니는 일본에서 오셔서 일본어도 유창하게 하시고 남친 키울 때 최대한 일본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셨음. 그래서 그런지 일본어도 조금 할 줄 알고 종교도 독실한 일본 불교임.




나같은 경우는 나만 따로 미국에 왔음. 엄마 아빠 누나는 다 한국에 살고 있고 나만 미국으로 건너와서 친척들이랑 살았음. 중학생 때부터 떨어져 살아도 매주 통화하고, 가끔씩은 영상통화도 해서 사이가 서먹하거나 그렇진 않음. 그래서 엄마 아빠 둘 다 영어 못하고, 뼛속부터 토종 한국인이라 내가 남자랑 만난다고 말했을 때 조금 충격 먹으셨음. 




일단 친구들 여러 명한테는 커밍아웃을 했는데, 가족한테는 고등학교 졸업 직전까지 말을 못 했음. 친구들한테 말할 때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하면서 말한 건데, 가족들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진 가기 싫었거든. 




근데 나도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고 하니까 언젠가는 말해야할 거, 게다가 멀리 떨어져있으니 직접 이래라저래라 못하는 상황이기도 해서 날잡고 풀려고 했음. 




먼저 누나한테 말했음. 평소에 말 진짜 한 마디도 안하고 대답도 늘 단답으로만 하는 성격인데 내가 진지하게 전화하고 말하니까 당황해서 나 달래주느라 고생 깨나 했음. 처음엔 미국에 가서 그런 거냐, 너 아직 사춘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고 며칠 지나니까 어느 정도 이해해준 거 같음. 내 인생 자기가 사는 것도 아닌데 뭐라할 처지가 아니지 않냐, 너가 행복했음 됐다 이렇게 끝났음. 우리 동거 시작하고 누나가 미국 여행한다고 우리 집 찾아온 적 있었는데, 자기랑 자기 남친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며 질투했음 ㅋㅋㅋㅋㅋㅋ




다만 부모님한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음. 누나는 그래도 젊은 세대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부모님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갑자기 아들이 양성애자라고 하니까 당황하실 수 밖에 없을 것 같더라고. 




내가 내린 결론은 손편지였음. 미국에 처음 온 시절, 성 지향성 깨닫고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남친 처음 만나고 그동안 쌓아온 추억들, 그리고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현재까지 평소에 전화할 때 늘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자한자 써내려갔음. 한국어로 글을 손으로 쓴지 수년이 지나서 글씨체 진짜 개발새발이었는데, 나름 정성스레 쓴다고 편지지 2장 앞뒷면 채우는데 거의 일주일 걸렸음.




졸업 한 달 앞두고 한국 주소로 편지를 보냈음. 그 주에는 엄마가 뭐라고 할지 너무 무서워서 전화도 안 했고, 전화 온 것도 일부러 안 받았음. 근데 엄마가 카톡으로 전화 한 번 하자고, 카톡보면 꼭 전화 걸어달라고 함.




며칠 뒤에 마음 다 잡고 전화 걸었음. 아빠가 받았는데, 뭔가, 화난 건 절대 아니었는데 되게 착잡해하는 목소리로 반겨줌. 엄마 옆에 있다고 바꿔줌. 




편지 내용 잘 읽었는데 아직도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함. 이렇게 된게 엄마 아빠가 멀리 나 떨어뜨려놓고 지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고 하길래 내가 그건 절대 아니라고 함. 엄마가 자책하는 게 싫어서 그냥 여기 살다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만나고 보니까 남자였더라 식으로 말했음.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가, 엄마가 마지막으로 너가 지금 만나는 사람하고 앞으로도 쭉 만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봄. 당연히 그렇다, 지금도 과분할 정도로 행복하다고 했음. 그 말 듣더니 엄마도 울음 터뜨렸고 나도 진짜 애써 참던 눈물 나왔음.. 그리고 졸업식 하고 나면 내 남친 꼭 만나보고 싶다고 엄마랑 아빠가 미국에 오기로 했음. 




근데 개뜬금없이 졸업식날 남친이 자기 부모님 데리고 와서 인사시킴. 설마 했는데 얜 나보다 먼저 말하고 심지어 내 자랑까지 했나봄. 어머니랑 아버지 나 보시더니 아들래미 보는 표정 지으시고 되게 살갑게 반겨주셨음. 이 전에 얘네 집 갈 때는 그냥 아들 친구구나 하셨을 텐데 갑자기 이런 사이가 되니까 불편해하실 줄 알았는데, 그 전보다 살갑게 대해주시고 나 엄청 이뻐해주셔서 매번 감사함.




엄마랑 아빠가 사정 상 내 졸업식에 못 오셨는데, 어머니가 같이 사진 찍자고 하셔서 외롭지 않은 졸업식이 되었음. 어쩌다 보니 내가 학점이 높아서 졸업 연설도 했는데, 아버지가 그거 영상으로 찍어서 나한테 보내주기까지 하셨음. 그리고 나서 1편에서 봤듯 저녁에는 나랑 남친이 단둘이 순두부찌개 먹으러 갔고 질질 짰음..




그리고 그 다음 달에 우리 부모님이 미국에 오심. 영어도 잘 못하시고 여기 환경 자체가 어색하셨는데 그래도 내 남친 얼굴 한 번 보겠다는 의지로 오셨음. 내가 얘 최대한 잘 보이게 하려고 한국어도 조금 가르치고, 이쁜 짓만 하되 과하게 하지 말라는 등 만나기 전에 시뮬레이션 오지게 돌림. 저녁에 다같이 외식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 했었는데, 난 통역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음 ㅅㅂ… 그래도 다행히 남친이 싹싹하게 굴어줘서 우리 부모님 마음에도 들었나 봄. 나중에 기회되면 부모님끼리도 만나고 싶다고 하셨음. 




대학 들어가고 나서는 롱디 시작했음. 미국 치곤 가까운 거리긴 하지만 서로 바빠서 자주 볼 순 없었고, 심지어 남친은 나랑 같은 대학교 가겠다고 진짜 입학하자마자 개빡공 시작해서 한달에 한 두번도 잘 못 보게 됨. 롱디할 동안 헤어질 위기도 두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남친이 항상 버텨주고 붙잡아 줘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 이 때 생각하면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해서 자세하게 썰 풀고 싶지가 않다 미안해…




2년 동안 개고생하더니 남친이 드디어 교수님 추천 받고 우리 학교 오는데 성공함. 한 교수님이 한 해 최대 두명 까지만 가능한 건데 이 힘든 걸 남친이 해냄. 




대학교 전입 확정나고 엄청 많은 일이 착착 진행됨. 먼저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 부모님이랑 만남 요청하셨고, 우리 부모님도 오케이하셔서 개강 한 달 전에 상견례를 했음. 서로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나랑 남친이 중간에서 통역 해가면서 대화했음. 한참을 대화하다가 우리 엄마가 우리 사이를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거냐고 아버지께 물었는데, 남친 아버지가 처음부터 그런 거 아니였냐고 엄청 웃으셔서 나랑 남친 둘 다 얼굴 화악 달아오르고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도 못했음 ㅋㅋㅋ 우리 엄마 아빠도, 남친 어머니 아버지도 흡족하신 상견례 자리였고 그 날 뒤풀이로 다같이 술 먹음. 아빠랑 남친 아버지는 언어만 안 통했지 벌써 그냥 친구 되신 거 같음. 둘이서 뭐하나 봤는데 우리 동네 주변 낚시 명소 같은데 알아보고 계시더라.




그렇게 상견례하고 몇 주 만에 나하고 남친 동거할 집 계약하러 갔음. 우리한테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집에 대학까지 가까워서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랑 어머니 아버지가 돈 합쳐서 큰 맘 먹고 좋은 집 해주신 거였음. 투룸이라 작긴 해도 집 하자 전혀 없고 두 명만 살거라 필요한 가구 몇개 놓으니까 크기가 딱 맞았음. 오히려 지금은 이거보다 크면 청소하기 힘들 것 같음.




그리고 현재임. 동거 시작한지 8개월 넘었고, 서로 식습관, 생활 패턴, 취미생활 공유하면서 식만 안 올렸지 그냥 부부처럼 살고 있음. 옛날 추억 소환하려고 옵치도 가끔씩 하는데 요즘은 남친 로아에 푹 빠짐. 지 캐릭 나처럼 커마 시켜놓고 하니까 내가 다 쪽팔려 죽을 거 같음. 아바타도 꼭 지 취향인 것만 끼고 다녀서 ㅈㄴ 쪽팔림…




내 전공 특성 상 해 질 때쯤 들어오는데 남친은 나보다 훨씬 일찍 들어옴. 그래서 남친이 먼저 들어와서 저녁 준비하고 있을 때 쯤에 내가 집에 들어오는데, 나 들어오는 소리 들리면 반가워서 현관으로 달려오는 거 보면 진짜 사랑스러워 미칠 거 같음.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은… 자기도 없는 시간 쪼개가면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일본어를 배울까 했는데 얘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편은 아니라… 지가 자처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가끔씩 투정 부릴 때 한국어로 투정부리면 진짜 내가 이길 수가 없음 ㅋㅋㅋㅋㅋㅋㅋ 아 ㅠㅠ




동거 시작하면서 생긴 문제는… 딱히 없긴 한데 식습관이 많이 달라서 처음에 좀 힘들었음. 남친은 얘 종교가 독실한 일본 불교라 채식주의자까진 아닌데 육류 고기를 거의 안 먹음. 자기 말로는 플렉시테리언인가 그런거라고 함. 근데 난? 돈까스가 내 소울 푸드라 냉동고에 튀김이랑 고기 몇근씩 쌓여있어야 함. 문제는 요리를 남친이 나보다 압도적으로 잘해서 얘가 맡는데, 동거 초반엔 식탁에 육류 올라온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음……. 물론 지금은 나 먹을 고기도 구워주고 튀김도 해 줌. 솔직히 자취 시작하면 먹고 싶은 거만 먹느라 살 뒤룩 뒤룩 찔 줄 알았는데 남친이 해준 것만 먹다보니 살이 찌긴 커녕 건강해지고 있어서 오히려 좋음 ㅎ




그리고… 성생활도 왕성히 함!;; 남친이 평소에 비교적 순하고 행동도 느릿느릿한데 침대에선 와일드하고 오지게 잘함. 심지어 나 보여준다고 운동도 해서 몸 보는 맛도 있음. 요건 3편으로 ㄹㅇ 찐하게 썰 풀게. 기다린 거 아니까 같이 올릴 거임.




또 쓰다보니 초장문됐는데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감자형들, 3편에서 만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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