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찜방 이야기

2026.01.20 10:24

99년, 그해 겨울 나의 첫 경험

  • 익명게시자 오래 전 2026.01.20 10:24 썰풀기 인기
  • 555
    7

99년도,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합격한 여러 회사 중 한 곳을 정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에 회식이 너무 많아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워낙 애착을 가지고 다녔기에 편도 1시간 반이 넘는 거리임에도 늘 아침 7시 30분 이전에 출근하여 일을 준비하는 성실한 사원이었다. 그 덕분에 진급도 하고 상도 많이 받았었지만...


날씨가 쌀쌀했던 11월경으로 기억한다. 코트를 입고 있었으니까. 그날도 여느 날처럼 회식을 하고 겨우 전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1호선 대방역에서 타고 가다 동대문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전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4호선 전철로 갈아타니 앉을 자리는 없었지만, 다행히 서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편하게 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회식 때 마신 술기운에 손잡이를 잡고 머리를 기대며 졸고 있는데, 손잡이를 잡지 않은 손에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내 손에 자기 손을 살짝 대는 느낌이 들어 실눈을 뜨고 보니, 60대 초반의 아담하고 희끗한 머리를 말쑥하게 2대 8 가르마로 빗어 넘긴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내 옆에 바싹 붙어 손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내 마음속에 혼자 고민하고 있던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에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이유도 모른 채...


그런데 이 사람이 손등을 터치하는 것을 지나쳐 내 손바닥 안쪽을 자기 손으로 살살 긁는 터치를 하기 시작했다. 내 겉모습에는 소위 '이쪽' 티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우선 호기심보다는 겁이 더 났기에 살짝 옆 칸으로 옮겨 갔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또 옆으로 쫓아와 아까의 행동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겁나던 마음은 점점 더 강렬한 호기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항상 정갈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애를 썼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썼을 때였다. 항상 맞춤 와이셔츠에 가방, 안경, 구두까지 정장에 맞춰 '깔맞춤'을 하던 시기였고, 다른 액세서리라곤 손목에 얇은 팔찌 하나뿐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난 그때까지 마음속으로만 남자를 좋아했지 육체적인 접촉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나이 드신 친구 아버지, 선생님, 교수님들을 동경하듯 좋아했었다.


각설하고, 그분의 행위는 점점 농도가 짙어졌다. 차고 있던 팔찌와 손목 사이 공간으로 손가락을 왔다 갔다 하며 터치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겁이 없어지고 호기심만 증폭되면서 그 떨리는 마음을 음미하게 되었다.


좀 더 확실히 확인해보고 싶어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아닌 그 전 정거장에서 내려버렸다. 그랬더니 그 신사분도 따라 내리는 게 아닌가... 하지만 말을 붙일 용기는 나지 않아 우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역 밖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그분의 행동을 곁눈질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취기가 올라 얼굴은 벌겋지만, 말쑥한 헤어스타일에 깔끔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분은 내가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을 왔다 갔다 하며 내 주위를 서성거리고 계셨다. 그때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분께 물었다.


"혹시 저 아세요?"


오히려 그분이 깜짝 놀라시더니 말씀하셨다. "아니요, 당신과 대화하고 싶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하며 명함을 불쑥 내미셨다.


'OO그룹 이사 OOO'


명함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밤이 늦었는데 저기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실래요?" "술은 더 못 마실 것 같고, 커피는 한 잔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나는 속으로 '혹시 이 사람도 나처럼 남자를 좋아하나?' 하는 기대감이 생기게 되었다.


호프집에 앉아 그분은 맥주를, 나는 커피를 시키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분이 자라온 환경과 회사 관련 일을 대충 설명하더니 나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참 멋있어서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속으로 '내가 뭐 잘난 게 없는데 뭐가 멋있다는 거지?' 하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냥 키가 좀 커서 여자들에게는 조금 어필이 되겠지만, 남자에게도 어필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바닥은 아담하고 통통한 스타일이 인기가 많다는 걸 알았지만 말이다.) 본인이 아들이 없어 훤칠한 사람에게 눈이 간다는 얘기도 덧붙이며, 그냥 편하게 시간이 될 때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자고 제안하셨다. 나 역시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 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렵지 않은 제안이라 여기고 내 명함을 드렸다.


며칠 후 토요일,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당시는 삐삐에서 시티폰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기에 시티폰으로 통화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받아보니 그분이었다. "을지로 롯데백화점 정문 앞에서 2시에 봐요." 마침 약속도 없었기에 그러자고 하고 나갔다. 만나서 백화점에서 살 게 있다고 하시더니, 같이 쇼핑하고 저녁 먹으러 가면 어떻겠냐고 물으시길래 괜찮다며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5층 신사복 매장은 주말이라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나도 모처럼의 백화점 구경에 아이쇼핑을 즐겼다. 그런데 본인의 옷을 이것저것 사더니 갑자기 나보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라고 하셨다. 나는 당황스러워 사양하며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이 사람 정체가 뭐지?' 그걸 눈치챈 그분은 더 이상 재촉하지 않고 본인 옷만 잔뜩 사서 나오게 되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그분은 자기가 아는 곳이 있다며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이동한 곳은 OO호텔 레스토랑이었다. 5성급은 아니었지만 정갈한 분위기와 깔끔한 인테리어, 은은한 음악이 깔리는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코스 요리를 주문하고, 그분은 이곳이 숨은 맛집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와인을 곁들이며 우리는 회사 이야기, 가족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런데 와인이 과했던 걸까, 아니면 중간에 맥주를 곁들인 탓일까. (나는 두 종류의 술을 섞으면 빨리 취하는 체질이었다.) 나도 모르게 술에 취해 가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는데 비틀거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분이 계속 권하는 와인에 머리가 빙빙 돌더니 결국 정신을 놓게 되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꿈속에서 어떤 남자와 목욕을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 내 몸 한구석이 따뜻해짐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눈을 살짝 떠 보니 나는 호텔 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있었고, 내려다보니 그분의 머리가 내 아래쪽에 있는 것이 보였다. 말할 수 없이 따뜻한 느낌과 함께 하늘로 붕 뜬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놀라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분이 온화한 눈매로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네가 너무 좋아서 입으로 키스해주고 싶었어... 놀라지 말고 그냥 눈 감고 느껴봐..." "...... 윽.... 헉..... 읍...." 내가 낼 수 있는 소리는 그게 다였다. 그러다 그분의 머리가 위로 올라오며 내 입술을 덮쳤다. "헉.... 아....~~~" "너를 처음 본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 그래서 대화라도 하고 싶고 터치하고 싶어서, 뺨을 맞을 각오를 하고 지하철에서 네 주위를 맴돌았던 거야. 오늘 이후로 네가 날 안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내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겠다 싶어서 술을 먹여서라도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 널 사랑하고 싶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만 혼자 간직해온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의 실체를 그때 처음 느꼈다.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지만, 나 말고도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남자와의 키스가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중략)


호텔 방 안에는 진한 흔적이 남았고, 그분은 내 옆에 쓰러지듯 누웠다.


(중략)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허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 말 못 하고 누워 있는데, 그분이 내 품으로 들어오며 내 가슴에 머리를 뉘었다. "창피하거나 이상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그냥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거니 이성, 동성 구분해서 생각하지 마." 창피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며 그분의 말에 수긍이 갔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 뒤,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 온몸에 남은 흔적과 냄새를 벅벅 씻어내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하는 뒤끝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그분은 애써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걸지 못했다. 호텔을 빠져나와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돌아오는 길에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남자를 좋아했던 게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이런 육체적 관계까지 포함된 것이었나? 그래서 나 혼자 끙끙 앓았던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구나.'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세상엔 더 많은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하지만 '저분은 기혼에 아이도 있는데, 가정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건가? 난 그 대상일 뿐인가?'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쉽게 결정을 못 할 것 같던 나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그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자.'


그 후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괜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자주 확인하게 되었다. 일주일쯤 지날 무렵 금요일 오전, 그분에게 연락이 왔다. "그동안 잘 지냈어? 난 너 생각하느라 일주일 내내 힘들었어. 보고 싶었는데 네가 불쾌해하며 가버리길래 고민하다가, 앞으로 못 보더라도 연락은 해봐야겠다 싶어 전화했어."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그저 사랑하고 싶은 대상이 남자인 것뿐이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고, 난 너를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챙겨주고 싶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아직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저도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로 했어요. 부담 없는 범위에서 좀 더 만나볼게요."


"고마워... 그럼 오늘 저녁에 봐. 맛있는 거 먹자."


그 뒤로 그분과의 만남이 약 3개월간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혼자인 그분의 집을 방문하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아무도 없다는 말에 안심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역에서 만나 함께 길을 걷던 중 그분이 입을 열었다. "사실 너에게 숨긴 얘기가 있는데, 오늘은 사실대로 얘기하고 싶어 초대했어." "뭔데요?" 대답 대신 그분은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동작구의 어느 골목, 2층짜리 단독주택 입구에는 한 여성분이 마중 나와 있었는데, 사모님이 아니라 가사 도우미라고 했다.


2층 현관으로 들어서자 향냄새가 진동했고, 집 안은 깔끔했지만 마치 불당 내부 같은 모습이었다. '무슨 행사를 하는 곳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분이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방 안에는 불상과 차례상 같은 상이 차려져 있었고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그분이 내 앞에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사실 난 신을 모시는 사람이야. 일명 무당이라고 하지. 너한테 처음부터 직업을 밝히면 무서워할 것 같아서 속인 거야. 미안해."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그래서 내가 아무 티를 안 냈는데도 알아낼 수 있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분의 직업 때문이 아니라, 3개월 동안 나에게 했던 회사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거짓말은 참기 힘들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씀드렸고, 거짓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커서 그분께 이별을 고했다.


며칠 동안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었다. 좋은 감정보다는 속았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그렇게 나의 첫 경험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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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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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첫번째 인연이
    쇼킹(?)한 기억으로 각인되셨군요.
    사람마다 入門이 각양각색이겠지요.

    2026-01-2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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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소름  끼쳤겠네요.

    2026-01-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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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무다ㅏㅇ

    2026-01-2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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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후반부에 갑자기 장르가 뒤바뀐 ,,,,

    2026-01-2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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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p style='color: #8c66ff' data-reply-type='point-alarm'>댓글 참여 보상으로 12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p>

    2026-01-2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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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조금 황당하네요..

    2026-01-21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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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좀 무서울듯

    2026-01-2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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