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불행은 갑자기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토록 사랑하고 영원 할 줄 알았던 우리의 인연의 붉은실이 날카로운 칼날에 흩어지기 시작한건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졸업준비를 위한 논문으로 정신이 없었고, 형은 승진시험을 위한 준비로 바빴다.
매일같이 마주보며 서로를 속삭이던 시간은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고, 서로를 만나는것이 자의가 아닌 타의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형의 잘생기고 화려한 외모탓일까 나의 열등감이었을까. 오랜만에 데이트에 술한잔을 하던 우리에게, 옆테이블의 여자그룹이 다가와 술게임에서 졌다며 번호를 달라고 했다.
내가 거절을 하려는 찰나, 형은 번호를 주었고 나는 기분이 상했다.
우리가 서로 사귀고있다는 사실을 밖에서 드러내고 싸울 정도로 우리는 과감하지 못했고, 집에 돌아오는길에 그 균열은 우리를 부수기 시작했다.
나는 형에게 번호를 왜 주었냐며 따졌고, 형은 술자리에서 흔한일이며 정중하게 연락은 거절하겠다고 했다.
평소 같았다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일이었을것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권태로움은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 같았다. 사소한 사건이 모여 계속해서 말다툼을 하게되고, 서로를 구속하려 했다.
모래성을 쌓는것은 어렵지만 무너지는건 사소한 파도 한번에 쓸려나가듯 우리는 힘들게 만들어온 모래성을 결국 허물고 말았다.
형과 더이상 사이가 멀어지기 전에 나는 이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형 또한 마찬가지였던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잃어버릴순 없었고 결국 영원할것 같았던 애인 사이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서로 등을 돌리며 헤어지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후 몇달이 지났을까. 형은 다른사람은 몰라도 나에겐 꼭 말해야 할거 같다며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형의 말을 들으며 정말 우리가 만난건 기적에 가까운일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결국 형은 게이가 아닌 이성애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헤어지고 나서도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술한잔 하는 친한관계였던 우리었기에 , 나는 형의 배려가 고마웠고 또한 형에게 미안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둘의 관계를 축복해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형과 나의 관계를 그저 친한 동네 형과 동생으로 알고 있을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밝힌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늘 같이 타던 그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품속에 가지고있던 종이를 펼쳐보았다.
-축 결혼-
나의 빛나던 20대 시절의 연애를 함께한 그 사람은 이제 다른사람과의 연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형은 결혼소식을 내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다.
그 바보같이 착한 사람은 결국 끝까지 내게 미안해했다.
늘 안부를 물으며 나와의 인연을 놓지않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말이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한 그 날은 형의 결혼식을 축복하고 축가를 불러준 날이었다.
나의 20대의 기억엔 늘 그 사람이 남아있을것이다. 물론 미련과 집착을 하는것이 아니다. 그저 남아있는 그 기억들이 떠올랐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형은 형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앞을 늘 축복할것이고.
아직 나는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을 갖고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나와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앞으로 그와같은 사람은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와의 인연은 돌이켜보면 내겐 정말 축복의 연속이었다.
그는 첫눈처럼 내게 왔다가, 진한 여운을 남기며 떠나 갔다.
그와 함께 했던 버스는 여전히 그대로 그시간, 그 장소에 도착했다가 떠난다.
나역시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었지만, 가끔씩 그 자리에 남아있던 그의 모습이 아련할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사람들이 지나치고 버스가 아무리 여러번 지나가도 같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나는 그 아름답고 아련한, 즐겁고도 슬픈 그 기억을 애써 잊지 않을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난 버스에 오른다.
엔딩이 슬프네 ㅜ 힝…ㅜ
2024-09-1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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