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형 자취방에 놀러갈 일이 생겼어.
처음에는 놀러가는 목적이었어.
대화도 좀 하고 즐겁게 술도 마시고 할 생각이었지.
형 집에서 저녁으로 꽃게를 먹고 어쩌다 야경을 보게 되었어.
근데 야경이 진짜 끝내주게 예쁘더라ㅋㅋ...
적당한 어두움과 적당한 온도, 그리고 고요한 주위 소리.
이걸 보고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어제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됐어.
영화 괴물 속에서 소년 둘이 꽃밭에서 달려가는 장면이었는데,
이게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머리 속으로 들어왔어ㅋㅋ
나도 저 소년들처럼 되고 싶다는 어제의 욕망, 부러움, 갈망이 다시 생각나더라.
형이 나에게 영화 '괴물'의 후기를 남긴 관객들처럼 "넌 잘못되지 않았어"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
...
그렇게 한 문장을 잇지도 못 할만큼 힘겹게 울면서 커밍아웃을 했어.
나는 내 사람을 좋아하는데, 내 사람들은 게이를 싫어한다.
어째서 내 사랑은 항상 일방적이냐, 나는 미움받는게 너무 무서운데 이렇게 계속 숨기고 살고싶지는 않다. 따위의 말이었던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미친짓이었지만(형이 동성애자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풍경좋다고 커밍아웃 해버린거니까ㅋㅋ)
형은 굉장히 따뜻하게 말을 해줬어.
"울면서 말하길래 나는 시한부인줄 알았어ㅋㅋ. 나는 그렇게 큰 상관 안 하니까 걱정마."
형 본인은 동성애자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면서 나를 다독여줬어.
그 뒤로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형의 생각을 들려주고(속에 있는 고민, 속마음을 가감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냥 지인으로 두라는 조언도 해줬어.
후... 너무 온실 속 화초로만 살아와서 그런가, 아직도 남에게 미움받는게 떨리고 무서운거 같아ㅋㅋ
눈물의 야경 감상을 마치고 형과 위스키를 마셨어.
함께 술을 마시면서 형은 나한테 여러 질문을 했는데(너는 탑바텀중 뭐냐, 이상형은 뭐냐 등등)
왠지모르게 쉽게 답할 수가 없었어.
사실 답변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나도모르게 귀가 빨개지고 대답을 회피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더라.
그냥 단순히 이상형 물어보는 건데도 나도 모르게 형 눈치를 보고 있었고, 답변을 조심하고 있었어.
아마 아직도 '다른 사람은 동성애에 대한 얘기를 싫어할 것(더러워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형 눈치를 본게 아닌가 싶네..ㅋㅋ
나도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ㅎㅎ
그 뒤로 형과 첫차 시간까지 롤 하고 헤어졌어ㅎ...
후기: 정말 미친짓이었지만 그래도 커밍아웃 잘 한거 같아...ㅎㅎ
앞으로 사람에 대한 내성좀 키우고, 스스로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음!
이야 ..이런거쉽지 않긴한데ㅜ ㅋㅋ
2024-11-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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