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선생님과 내 관계가 특별히 달라졌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선생님께 기울고 선생님의 사소하지만 달라진 행동들이 선생님과 내가 좀 더 가까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복도에서 선생님을 마주치는 날이면,
"여~ 매점가냐?"
"아, 네!"
"그래 잘 먹고 많이 커야지. ㅋㅋ"
"아 무슨 소리에요~ 잘 크고 있거든요."
"그래그래."
하며 웃으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
교실에서 수학 공부를 할 때면,
"또 수학 공부냐?"
"저 요즘 진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번에 100점 받을 것 같은데요?"
"어렵게 낼 건데."
"그래도 해야죠. 치킨 얻어 먹어야 돼요."
"그려."
하고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 그랬어.
전에는 그냥 친절한 선생님이시면, 치킨집 이후로는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 내적 친밀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는 많이 웃으셨던 것 같아. 그렇게 친밀도작을 열심히 하니까 나도 이제는 좀 과감하게? 말할 수 있게 됐어.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별로. 넌 월요일 아침이 좋냐?"
"학교 오는 건 싫어도, 선생님 수업 들을 수 있잖아요."
"내 수업이 좋냐?"
"네. 좋은데요?"
"짜식, 귀엽기는."
하면서 엉덩이 토닥임도 받고 가끔은 큰 손으로 귀엽다고 볼을 축 잡으셨는데 애기 취급이지만 귀엽다고 해주시니까. 그냥 다 좋았어. 가끔은 내가 먼저 선생님을 찾아가기도 했어. 선생님이 야자 감독이신 날은 야자 시작하기 전에 일부러 선생님을 뵈러 갔지.
"선생님 오늘도 파이팅이에요! 여기요."
"뭐냐, 이건."
"뭐긴 뭘요 커피우유잖아요. 감독하시느라 힘드실 것 같아서 하나 사왔어요."
"됐다. 뭘 이런 걸."
"에이, 그래도 사왔는데 그냥 받아주세요."
"뭐, 그래. 넌 뭐 안 마시냐?"
"아 전 괜찮아요. 선생님 맛있게 드시고 힘내세요."
"임마 이젠 뇌물까지 주네. 그래 고맙다. 어서 가 봐."
하면서 쑥스러운 듯한 선생님 미소와 쓰다듬은 덤으로 받지. 그러고는 감독하러 들어오셨을 때, 말 없이 스윽 책상에 초코 우유를 올려놓고 가주셨어. 뒷모습이 어찌나 더 듬직해 보이시던지. 이제는 다른 애들한테는 호통치시다가도 날 보면 다정하게 웃어주실 정도로, 꽤 많이 사이가 발전됐다고 생각했어. 나는 거의 혼자서 연애를 하고 있는 셈이었지. 밤에는 선생님 생각하면서 여러번 욕구도 풀었어.
그런 관계가 유지되는 와중, 갑작스럽지만 바로 다음 기말에서 내가 수학 100점을 맞아버렸어.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정말 큰 동기가 됐던 것 같아. 그렇게 100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선생님에게 당당히 찾아갔어.
"선생님 저 100점 맞았어요."
"오, 진짜 맞았네?"
"당연하죠. 치킨 얻어먹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래그래, 열심히 했네. 오늘 갈까?"
"아 그래도 돼요? 시간 괜찮으세요?"
"어, 집에서 뭐 할 것도 없고. 선생님 밥동무나 해줘라."
"네!"
그렇게 오늘도 저번에 갔던 그 치킨집에 갔어. 똑같이 선생님 차에 타고, 선생님을 보며 갔지. 치킨과 맥주를 시키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먹었어. 그래서 저번과 다를 거 없이 끝날까 좀 걱정됐어. 욕심이겠지만, 여러 의미로 선생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거든. 그래서 그냥 질러버렸어.
"선생님 여름 방학 때 뭐하세요? 기말고사도 끝났고 이제 곧 방학이잖아요."
"나? 그냥 운동하거나 집에서 티비 보고, 밀린 학교 일 해야지."
"안 바쁘시면, 저 수학 공부 도와주시면 안 돼요?"
"뭐?"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 없었어. 방학을 맞이한 선생님께 공부를 도와달라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귀찮은 일이잖아. 이걸 해주겠어 싶었지. 하지만 이거 말고는 도저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고, 그냥 선생님과 같이 있고 싶다는 내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했었어.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니까 포기하려 했지.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별 소리를."
"그래, 뭐. 할 것도 없는데."
"네?"
"도와준다고. 우리 집에서 하자."
"좋죠. 저야!"
내가 말하고 내가 놀란 것도 웃기지만, 처음엔 거절하시고 졸라볼 생각이었는데 너무 흔쾌히 수락하셨어. 그것보다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었어. 방학 때도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데, 심지어 그것도 선생님 집에서? 이거 잘만 하면 정말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선생님의 자는 모습, 침대에서의 모습, 집에서는 어떠실까. 30대 후반 노총각 선생님은 쌓여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 온갖 망상을 다 했지.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 일어날 거라고 조금은 확신했던 이유가 선생님이 유독 나에게 잘해주셨다는 점에 있었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하고도 그렇게 친하게 지내시지 않는데, 정말 나한테는 다정하셨거든. 선생님이 나를 꼬시려는 의도 이런 건 둘째 치고 그런 선생님의 행동들이 내가 선생님에게 더 과감하게 다가가고, 어필할 수 있게 된 바탕이 된 거지.
"그럼 오늘도 잘 가고."
"네, 선생님도요. 저도 오늘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어요!"
"어어, 나도. 귀여운 제자랑 치킨 자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네."
"ㅋㅋ 먹으면 되죠."
"그래? 공부 열심히 하면 방학 때도 오지 뭐."
"네!"
"그래, 잘 가라."
"아, 선생님. 핸드폰 번호 주실 수 있으세요? 방학 때 뵈려면 연락 드려야 하잖아요."
"어 그렇지. 자."
"네!"
그렇게 선생님과 번호 교환까지 마치고, 집에 들어갔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의 '멋있는 수학샘'이라 저장된 번호를 보며 혼자 설레고 신났지. 문자를 보낼까 말까 하다가, 뭐라도 한 마디 보내보고 싶어서 보냈어.
'선생님 잘 들어가셨어요?'
'어'
'네, 저도 잘 들어왔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봬요.'
'자라.'
싱겁긴 했지만 선생님과 주고 받은 첫 문자였어.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방학이 시작되고 선생님 집에서 하는 선생님과의 오붓한 과외도 시작됐지.
여기까지 좀 길었지만, 제 추억을 회상할 겸 초반의 꽤 제 첫사랑의 풋풋함을 살려봤습니다. 빌드업이 너무 길어졌네요. 그래도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겠습니다. 기대하시는 게 뭔지 저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 번에는 들고 오도록 하겠읍니다. 그럼 이번에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