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찜방 이야기

2023.07.05 09:12

(펌) 동갑내기 외국인과 썰

  • 익명게시자 오래 전 2023.07.05 09:12 썰풀기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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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쪽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니까 벌써 7~8년 전 쯤이네요.

학부 졸업 전 취업해서 죽 쉬지 않고 일하다보니 뭔가 소모되는 느낌이 문득 들어서 뭐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까운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출근 전 1시간 씩만 해보자는 호기로운 생각에 시작했죠 ㅎㅎㅎ


원어민과 1:1 수업을 등록했는데 원하는 튜터와 부킹해서 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처음이라 여러 선생님들과 수업을 돌아가면서 했는데 좀 진중해 보이는 캐내디언 튜터가 있어서 부킹해서 수업을 들어봤습니다.

잘생긴 건 아니었는데 진지하고 꼼꼼하게 튜터링해주는 게 마음에 들어서 이 선생님과 수업을 계속 같이 하게 됐습니다.


1:1수업이다 보니 나중에는 수업 외에 이런 저런 얘기들도 하게 됐는데, 알고보니 동갑이어서 뭔기 더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쪽 관련한 얘기는 전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떠본 거 같기도 합니다만... 이태원 얘기가 나왔어요.

Gay hill 에 대해서 아느냐고 묻더라구요.

사실 전 은둔이라 그때까지 이태원 이쪽 업소에 가본 적도 없었고, 이태원은 아무래도 교통이나 주차가 불편해서 일반 친구들과도 잘 가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게는 신기한 세계의 이야기여서 귀를 쫑긋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개월 쯤 수업을 들었을 때는 가끔 퇴근하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할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늘 저를 칭찬해주고 늘 저에게 멋진 사람이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니, 또 게다가 동갑내기 친구이니 저도 뭔가 마음을 좀 열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칠 때 쯤 이 친구가

"홍대에 좋은 레스토랑을 아는데, 이번 주말에 같이 저녁 먹지 않을래? 니가 괜찮다면"

라고 말하더군요.

그동안 밖에서도 종종 봤었는데 조금 다른 느낌으로 말하는 거 같았지만... 또 제가 은근 둔해서 그냥 쉽게 그러자고 했습니다.


주말이 됐고 오랜만에 홍대를 가봤습니다.

초여름 저녁. 적당한 날씨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 맞춰서 약속 장소로 갔는데 이 친구가 먼저 와있더군요.

근데 수트를 말끔하게 입고 나왔더라구요

평소 진이나 치노팬츠에 캐쥬얼한 셔츠를 주로 입었었는데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보니 또 새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와 수트 멋지다. 그런데 좀 덥지 않아?"

"너하고 첫 데이트라서 입은 거야. 조금 더워도 괜찮아"


순간- 아.. 이 친구가 이 쪽이구나

내가 이 쪽인 건 어떻게 알았을까 등등 여러 생각이 빠르게 교차했는데, 그 말을 하고 나서 볼이 살짝 빨개지는 걸 보면서 귀엽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우면 재킷을 벗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엄청 긴장하는 모습을 보니... 아 저도 뭔가 가슴 속이 간질간질해졌습니다.


레스토랑은 분위기도 좋고 스테이크도 훌륭했습니다. 와인도 살짝 마셨고 이 친구도 평소처럼 편안해진 거 같아서 슬쩍 물었습니다.


"그런데...내가 이 쪽이라고 알고 '데이트'하자고 한 거야?


"아니 몰랐어. 여자친구 얘기도 없고 데이트 얘기도 없고 그래서...그냥 용기내서 말한거야. 난 게이인데 너는? 싫으면 그냥 얘기해도 괜찮아. "


"그래 용기내줘서 고마워. 나도 이 쪽인 거 몇 년 전에 알게 됐어. 데이트 신청 받아보는 건 처음이야 ㅎㅎ "


"정말? 넌 이렇게 멋진대? 그런데 남자 친구는 있니?"


"고마워 너도 멋있어. 특히 오늘 ㅎㅎ 작년 겨울에 헤어졌어. 3년쯤 만났었고. 너는?"


"아 3년? 외국인이었어? 난 싱글이야"


"아니 한국사람이었어 ㅎㅎㅎ"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제법 로맨틱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많이 긴장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이 초여름밤 무드와 어우러지면서요.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근처 카페로 갔습니다.

홍대는 문외한이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 있다며 두 블럭 정도를 걸었습니다. 인듀스트리얼 풍의 카페였는데 생각보다 조용해서 저도 좋았습니다.

커피를 마시는데 그 친구가


"그런데 너는 한국인만 만나?"


"글세.. 아직 남자랑 사귄 게 한 번 밖에 없어서... 좋아하면 외국인도 만날 수 있겠지. 너는 어때?"


"캐나다에서는 몇 번 연애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아무도 못만났어. 내가 한국말도 못하니까ㅎㅎ 배워야지 이제"


"그렇구나 ㅎㅎ 내가 첫 데이트라니 영광이다."


"아...나 오늘 엄청 긴장했어 ㅎㅎ 오늘 데이트 어땠어? "


"니가 좋아하는 곳들 데리고 가줘서 좋았어. 음식도 훌륭했고 음악도 좋았고... 그렇게 긴장 안해도 돼 ㅎㅎ"


"휴 다행이다 그럼... 우리 또 만날 수 있는 거지?"


"그래 그러자 ㅎㅎ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안내할게. 오늘 진짜 고마웠어"



첫 데이트는 성공적이었고, 그 뒤로 데이트가 더 있었습니다. 영화도 보고, 한강도 가고...그 사이 물론 섹스도 있었죠. 잠자리 후에 제가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하는데 저더러 'magic hands'를 가졌다고 하더라구요 ㅎㅎㅎ

그렇게 3달쯤 지났는데 하루는 점심을 같이 했어요.

회사가 서로 가까우니 장점이었죠.


"나 곧 비자가 만료돼"


"아 그렇구나 캐나다로 다시 가는 거야?"


"사실 가족들이 그리워서 한국에 더 있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고민돼"


" 그렇구나... 가족이 있으니 가라고도 가지 말라고도 하기가 어렵네"


"가지 말까?"


"음...그래도 너 가족들 보고 싶어했잖아...항상 사진도 가지고 다니고..."


"그럼 혹시..."


"응?"


"나랑 같이 캐나다로 갈래? 결혼해서 가면 어때? 난 너라면 결혼하고 싶어"


"결혼??"


"응 캐나다에서 몇 년 전부터 동성결혼이 합법화됐어. 친구들 중에 결혼한 커플도 있고..."


"그렇구나..결혼이라..."


"만난지 얼마 안됐지만...그래도 한 번 생각해볼래?"


"그래 생각해볼게. 결혼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당장 대답 못해줘서 미안해"


"괜찮아..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며칠 진지하게 고민해봤습니다.

결혼에 대해서 처음으로 고민을 해보게 됐어요.

그것도 백인, 남자와 캐나다에서...


제가 여기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결론은 아시겠죠? ㅎㅎ

30대 초중반이라 왕성하게 일하고 있을 때였고, 아직 이쪽이 익숙하지도 않아서 연애도 버거웠기에... 그리고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다보니...가족 이슈도 넘어서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직 만난지 3개월이니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했었구요.


그래도 아직까지 가끔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되면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오곤 합니다. 즐거운 성탄 보내라... 새해 복 많이 받아라...물론 그는 캐나다에서 남자친구 만나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ㅎㅎ


지금같으면 어쩌면 다 정리하고 한국을 떠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저에 대해서 그 정도로 진중하고 가치있게 생각해 준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또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요 :)


봄이라 그런지 자꾸 이런 저런 옛생각들이 떠오르고...혼자 추억도 많이 팔게 되네요!

너무 아재 감성이라 타박하지 마시고 예쁜 마음으로 예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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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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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게시자  오래 전

    여행가서 얼굴 한 번 보고 오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2023-07-05 10:00

    profile_image
    익명게시자  오래 전

    캐나다도 오랜 시간 투쟁하여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루었다고 해요. 초기엔 경찰들이 게이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기도[https://woorivan.com/data/editor/2307/cmt_988411511_IFDMGLJZ_d1a84bc2a6ed67f3b37989210b939e160d198286.jpg]

    2023-07-05 10:14

    profile_image
    익명게시자  오래 전

    내껄 다 내려 놓고 가긴 쉽지 않죠ㅜ

    2025-10-1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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